2008년 11월 04일
에픽하이 | 나침반 위의 남자들.
5집 <Pieces, Part one>을 발표한 뒤, 에픽하이는 좀처럼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여전히 그들의 이름이 거론된다. MBC <명랑히어로>에서 신정환은 자신과 이하늘의 갈등에 대해 언급하며 “(에픽하이가) 하늘이 형이 형네 가게 가면 죽여버린데요라고 했다”고 말했다. 에픽하이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들과 오락 프로그램 속 사람들과의 관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메이저로 성공한 힙합 그룹 에픽하이. 하지만 연예계 선배의 클럽에 출연해야 하는 에픽하이. 스탠퍼드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희생양’에서 세상의 절망과 구원을 다룬 타블로. 하지만 시트콤에 출연했던 타블로. 타블로는 “사람들은 내가 책을 내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면서 오락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나쁘게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계속 그들의 태도를 의심했다. 타블로의 아버지가 타워 팰리스에 산다며? ‘DJ’ 투컷은 왜 춤을 춰? 에픽하이의 4집 <Remapping the human soul>에서 그들에 대한 비난을 한데 모은 ‘FAQ’는 그 시선들에 대한 항변이었다. “방송과 학벌 때문에 뜬 거 아닌가? (중략) 모두 성공을 위해 만든 설정이다.”
“깨끗한 종이 한 장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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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기도, 난 저기도, 난 왼쪽도, 오른쪽도, 낮은 곳도, 높은 곳도 아냐.” 그리고 <Pieces, Part one>의 첫 곡 ‘be’는 그렇게 시작됐다.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 힙합 신과 오락 프로그램에 모두 속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디서 활동하든 완전히 지지 받지 못했던 중간자들. 그들은 2CD를 빼곡이 랩으로 채운 <Remapping the human soul>로 그들이 ‘연예인’이 아닌 ‘힙합 음악’으로도 강력하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었다. 타블로는 학력 위조 파문이 일면서 덩달아 학력을 의심 받아 자신의 미니홈피에 ‘FAQ’(fuck you)를 날렸고, “힙합 뮤지션사이의 갈등 조장을 스타크래프트처럼 즐기는” 어떤 힙합 마니아들은 그들과 몇몇 힙합 뮤지션들의 반목과 다툼에 대한 루머들을 올렸다. <Pieces, Part one>은 바로 그 상황에서 에픽하이가 세상에 대해 마구 쏟아낸 외침들의 조각 모음이었다. 타블로는 타이틀 곡 ‘One’에 대해 스스로 ‘자살’에 관한 곡이라 말했고, 미쓰라眞은 ‘breakdown’의 리믹스에서 ‘힙합 신의 빛이 하나 꺼질 때 빗발치는 글을 믿지마라’라면서 힙합 신에 대한 어떤 울분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들은 후속곡 하나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게 만드는 인터넷의 글들에 지쳐 해체를 고민했다.
그래서 에픽하이에게 EP앨범 <Love scream>은 흥미로운 터닝 포인트다. <Love scream>은 <Pieces, Part one>의 정반대에 있다. <Pieces, Part one>이 기계 덩어리의 이미지를 쓴 재킷에 일렉트로니카적인 사운드까지 수용했다면, 물감을 통해 꽃의 이미지로 재킷을 만든 <Love scream>은 피아노와 현악 세션을 동원해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배어있다. 그러나 이 상반된 앨범들은 동시에 쌍생아처럼 하나로 붙어있다. <Pieces, Part one>의 실질적인 마지막 곡 ‘당신의 조각들’은 <Love scream>처럼 피아노와 현악세션의 사운드가 주를 이루고, 차분히 가라앉는 소리들 속에서 앨범 전체를 차분하게 마무리한다. 에픽하이가 폭주하듯 무엇이든 내뱉은 <Pieces, Part one>이 그들의 폭주였다면 ‘당신의 조각들’은 파괴 끝의 폐허였고, <Love scream>은 파괴 뒤에 오는 재생의 과정이다. 앨범 속지 첫 장에서 “세상은 소란스러워졌다. 깨끗한 종이 한 장으로 돌아오고 싶었다”던 그들은 아날로그 사운드를 통해 천천히 감정을 쌓아 나간다.
연예인은 그만두고 음악만 하고 싶은 이들의 길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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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와 미쓰라眞의 랩은 분노와 울분과 자살과 힙합을 벗어나 차분히 ‘사랑’에 관한 단어들을 읊조린다. 잿더미 위에서 재생을 맞이하며 서서히 감정이 정화되고, 상처 입은 몸에 새 살이 돋아나는 것 같은 과정. 그들의 정서적 변화는 그들의 음악이 힙합 너머로 나아가는 것으로 이어진다. <Love Scream>의 아날로그 사운드가 흥미로운 것은 사운드의 성격 때문이 아니라 에픽하이가 그 사운드로 만들어내는 정서적 방향 때문이다. ‘1분 1초’는 기존의 발라드에 가까운 작법에 랩을 얹은 곡에 가깝다. 텅 빈 듯한 공간 안에서 나직한 타블로의 목소리 뒤에 피아노가 깔리고, 드럼과 현악세션이 차근 차근 쌓이면서 천천히 감정이 고조된다. <Love Scream>은 피로로 가득한 사람들에게 소량의 비타민이 될 수 있는 작은 소품집이지만, 그들이 ‘사랑’을 통해 연예인도, 힙합 뮤지션도 아닌 새로운 지점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외침’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음악은 계속하면서 연예인은 은퇴하면 안 되나”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에픽하이의 고민은 아직 완전히 종료된 것은 아닐 것이다. ‘1분 1초’는 에픽하이, 혹은 그들의 브레인 타블로가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여전히 중간자로서 그들의 위치를 의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1분 1초’에서 타블로의 작은 읊조림은 그들의 과거 히트 싱글처럼 귀에 확실히 들어오는 멜로디가 앞에 등장하고 나서야 시작된다. 그 멜로디는 ‘1분 1초’에서 차분히 감정을 쌓아나간 뒤 다시 등장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나지만, ‘1분 1초’는 그것을 앞에서 먼저 들려준 뒤, 거의 단절에 가까운 전개로 ‘다시’ 곡을 시작한다. 인기와 음악성, 명분과 실리. 그리고 그 틈 사이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말들. <Love scream>이라는 +- 제로의 위치에서 분노 대신 사랑을, 그리고 힙합 대신 힙합이 아닌 무언가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에픽하이는 그들만의 좌표를 찾을 수 있을까
출처 : 매거진T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02001000&article_id=48999)
# by | 2008/11/04 14:14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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